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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10 우리는 왜 성선설을 믿어야 하는가? (1) _ inureyes
  3. 2008/08/10 정전 / 분실 (0) _ inureyes
  4. 2008/06/27 2005년 12월 11일, 조교실. (4) _ inureyes
  5. 2008/06/01 대한민국, 2008년 6월 (1) _ inureyes

의사 결정과 기록

그냥이야기 | 2008/08/19 04:29 | inureyes

삶의 과정은 다양한 의사 결정 과정의 연속이다. 다양한 역할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의사 결정을 요구한다. 결정을 위해서는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고민 끝의 결정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책임"이다. 책임은 결국 어떤 가치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무엇에 대한 책임인가 자문했을 떄 떠오르는 것은 학문에 대한 책임, 믿음에 대한 책임, 사람에 대한 책임 정도이다. 이 세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그에 나의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치는 책임을 불러오고, 책임에 대한 행동 방향은 역할에 따라 충돌한다. 역할 갈등은 항상 일어나며, 삶은 균형을 끊임없이 잡아 나가는 과정이다. 스스로의 갈등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의사 결정으로 추상화한다. 이 과정에서 역할 갈등은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세상에는 일기, 사진, 일정표, 노트 등 자신을 비추는 다양한 종류의 거울이 있다. '의사 결정 기록'은 어떠한 방향으로 결정을 했으며, 그 결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이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역할마다 의사 결정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귀중하게 생각하는 기록이다.


많은 종류의 기록 중 한 가지 주제나 역할에 대하여 자신이 대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추적할 수 있는 기록은 의사 결정 기록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은 스스로의 갈등에 대한 기록이며, 당시에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내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할 갈등에 대한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기록들에서는 총체적인 나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의사 결정 과정의 기록에서는 분절된 나 사이의 충돌을 읽을 수 있다.


내일 논의할 내용들 때문에 관련 의사 결정 기록을 읽다가 '왜 이런 기록을 남기는지' 잠시 적어 둔다.


원문 : 의사 결정과 그 기록 (forest)

뜬금없기는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 7월에 열린 태터캠프에서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성선설'이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이 쓸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이라거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성선설을 믿어야 합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그 시점에서 TNF와 Needlworks, 텍스트큐브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 태터앤 컴퍼니와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저 한 문장만이라도 족했을 것이다.

성선/성악 어느쪽을 지지나느냐고 질문 받으면 그 어느쪽도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성선/성악/성무선악 모두 인간의 다양성과 거리가 있는 '본성'에 대한 물음이다. 선천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욕구를 대 보라면 인정욕과 성욕은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본성론의 문제가 되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꼭 성선악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시험 문제에 객관식으로 나왔을 때 뭘 찍을거냐고 하면 그 때는 성악설을 찍을 것이다. 굳이 게임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선천적인 욕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강도가 크다고 믿을 수록 행동은 악해지게 되어 있다.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 '인간실험' 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을 덮을 때가 되면, 성악설이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에 가까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성선설을 믿어야 한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필요에 더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한지 두 해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시간동안 항상 즐겁지는 않았다. 여러 일이 있었고, 즐거운 일 보다는 신경써야 하고 머리 아픈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계속 무엇인가 하고 있는 이유는, 이 일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행동도 목적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그 어떤 단체도 철학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마찬가지이다. TNF는 시작하면서 거창하고 무모한 철학을 내세웠고, 시간과 정열을 연료 삼아 현실로 끌어 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결과가 철학과 상충되는 부분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를 보면 유명한 예들이 몇가지 있다. 가장 거창한 예들로는 탄광 파는 도구를 만들었다가 전쟁의 세대를 바꾸어버린 노벨과, 원자력 무기의 힘을 숫자로만 이해하고 있다가 실제 결과를 보고 인생의 후회를 한 아인슈타인이 있다. 거창하게 갈 것 없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

블로그를 만든다. 왜 만드는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접점을 형성하는 축, 소통 비용을 0에 가깝게 줄이기 위한 방법, 데이터의 소유권이 저자에게 있는 사회, 자본과 권력에 의하여 발언권이 제약받지 않는 사회. 그래서 '인생에 도움 하나 될 것 없는 일인데 참으로 생각 없이 열심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태터툴즈를 만들고 텍스트큐브를 만든다.

역설적이다. 텍스트큐브를 이용해서 만든 수없이 많은 사이트들이 있다. 사이비 종교 사이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인 변태 사이트 홍보 블로그, 스팸 발송 블로그, 사기용 대포 블로그, 원 저작자들의 댓글에 악플로 대응하는 저작물 불법 공유 블로그, 불법 펌로그, 원나잇 섹스 블로그, 보험사기 블로그. 가끔 스팸 필터링 연구를 하면서 사이트들을 찾아 다닌다. 관리 모드로 들어가는 단축키인 q를 누를때면 어김없이 맞아주는 로그인 화면. 그 코드를 스스로 짰다고 생각할 때 마다 한숨이 나온다. 한숨이 쌓이면 후회가 되고, 후회가 쌓이면 절망이 된다.

절망이 될 때쯤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다. 지인 왈 "그러면 아래아한글로 쓴 야설 파일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이찬진씨가 좌절해야 되냐?"

프로그램이 몇 년을 두고 끊임없이 수정되고 고쳐지는 원동력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 원동력 중의 하나가 스스로의 철학이라면, 이러한 부분은 코드를 공여하는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언젠가 부딪게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목표를 잃는 이러한 종류의 절망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한 단어가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성선설을 믿어야 한다. 설령 스스로가 성악설이 더 신빙성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성선설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이 더 많기를, 프로그램으로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유하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은 그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더 행복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가끔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기회들이 있다. 입을 열면 묻는다. "성선설을 믿으세요, 성악설을 믿으세요?" 자꾸 사람들에게 묻는 것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인 듯도 하다. '성선설을 믿고 싶어요, 성악설을 믿고 싶어요?'

노벨은 생전의 마지막 도박으로 노벨 평화상을 남겼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선한 본성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있다. 본성은 악하다고 믿으면서도 "에이 어떻게 사람이..." 같은 말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것이 사람이다. 오늘 새벽에도 코드의 행간에 약간의 희망을 엮어 짜 넣는다.

정전 / 분실

그냥이야기 | 2008/08/10 01:16 | inureyes
오늘도 학교 전체가 예고 정전이다. 덕분에 웹서버도, 계산 서버도 뻗어서 연구도 웹코딩도 잠시 멈췄다. 독서하기 참 좋은 날이 되어 아침에는 밀린 책을 간단하게 읽고, 오후에는 학교를 나와 더위를 피해 (인터넷이 되는 곳으로) 왔다. (그렇다. 간만의 큐브닷컴에 대한 관심은 내 서버가 죽어서일까나...)

어제 아이팟 터치를 분실했다.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메일을 읽다가 버스가 와서 돈을 내기 위해 주머니에 넣었는데, 내릴 때 보니 케이스만 주머니에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떨어뜨렸나 생각하고, 돌아 나오는 버스들을 몇 대 올라타 찾아 보았다. 찾지 못하고 방에 돌아와 구글 메일에 들어가보니 누가 IMAP이 설정된 아이팟으로 하루치 메일을 지워놓았다. 켜자마자 분실시 찾을 수 있는 내 연락처가 나오도록 해 놓았으니, 누가 마음 먹고 가져갔거나 주워서 자기가 쓸 요량으로 메일을 하나씩 지운듯. (기본값이 50개씩 출력이라 딱 50개를 지워 놓았더라.) 참으로 가지고 싶었나보다. 관련해서 접근 가능한 이메일 및 모바일미 푸시 접속 정보를 수정하고 나니 터치가 손을 떠났음이 실감났다.

정전이 되어서 블로그가 사라졌다거나 일상과 예정을 전부 핸들링해주던 아이팟을 잃는다거나 하는 일을 겪으며, 기계에 예속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였다. 그러면서도 랩탑으로 삐질삐질 이렇게 테라 인코그니타에 접속해서 간만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기록하는 행위가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 조금 무섭다.

덧. 언제인가부터 비공개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온갖 데이터를 블로그로 쓸어 넣고 있다. 위키가 하던 일을 forest가 덤으로 떠맡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아무래도 차일피일 미루던 엔트리 버전 관리 기능이랑 자동 연관 사이트맵 기능을 집어넣게 될 것 같다. 현재 트렁크에서 테스트 중인 memcached랑 mysqli 부분, 블로그 뷰 구조의 개편과 스킨 2.0 스펙 작업을 마무리 한 후 시작할 듯.

2005년 12월 11일, 조교실.

그냥이야기 | 2008/06/27 14:23 | inureyes
공부
공부.
태그 : 공부, 조교실

대한민국, 2008년 6월

그냥이야기 | 2008/06/01 06:35 | inureyes

금요일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다. 지난 일주일이 너무나 피곤해서 잠이 쉽게 올 줄 알았는데 눈이 감기지 않았다. '속에 천불이 나서' 잠이 왔다. 잠을 자기 위해서 술을 먹으러 나갔다. 새벽공기는 몸을 차게 식혀 주었지만, 타는 가슴속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문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 그에 대한 공포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대명제가 실종되고 있다. 그에 대한 정권 차원의 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완전히 (소수 중심의)경제 논리로만 접근한'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한다.

1988년부터 20년동안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국가로서 자신을 규정하기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실질적으로 주권재민의 원칙이 구성원 모두에게 받아 들여 이후 이제 채 10년이 겨우 넘었다. 오래되지 않은 만큼 약하고, 익숙하지 않은 만큼 불안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주권 민주주의 법치 국가로서의 위치는 그렇게 약한 것이었지만, 그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이나마 국민은 모두 자신이 그러한 국가에서 살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지나친 믿음은 나태를 가져오고, 섣부른 나태는 민주주의 기반의 허약함을 도외시한채 그 다음 목표를 바라보았다. 국민들은 기본권이 보장되기에 잘사는 나라를 원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당연히 기본은 하고 그 이상을 원한' 국민들이, '기본도 몰랐던' 사람들을 자신의 대의 대표로 선출한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이전 정권때 적용되었던 기준을 현재의 내각에 적용시키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 손의 손가락 수에도 못 들어올 때 부터 모두가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법률과 헌법의 울타리가 여전히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실용'과 '경제'라는 내용 없는 레토릭을 지팡이삼아 초법적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현재의 정부와 집권 여당의 태도는 끊임없이 국가의 기본 이념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걸 더이상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으로서의 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 대상이 고위층이라면 더욱 당연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가는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구성원에 대한 고려와 절충을 해야 한다. (이미 훨씬 더 큰 이익을 취하고 있는)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집단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할 권리가 국가에게는 없다. '기회의 균등' 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구성원은 이를 위해 교육 기회의 균등을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따라 자본이 교육의 기회를 결정해준다는 사고에 의한 정책은 자본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기회의 균등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게 문제이다. 단지 현재의 정치 세력이 권력을 획득한지 100여일이 지나가고 있을 뿐인데, 그 기간동안 대통령과 그 내각이 한 일은 모두가 대한민국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초중고교생들이 저항권을 행사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민주주의 속에서 태어나 민주주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이다. 자신이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학교에서 배웠으며, 그 내용과 현실이 일치하는 것만을 보았던 세대다. 이 민주주의 1세대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모습에서 두가지 길을 본다. 이들이 2008년에 하게 될 경험이, 국가에 대한 신뢰와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에의 확신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그렇지 않으면 미리 상상하기조차 싫은 트라우마를 윗세대들처럼 가지게 될까.

촛불을 든다. 명확한 목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시스템은 돌아가며,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촛불을 통해서 강력한 주장을 펼치려고도 하지 않고, 직접적인 어떤 것을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저항권을 표출하는 것은 투표에 비하여 훨씬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남은 몇 년 간을 버티려면 적어도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 과 '법에 입각한 정부 구성' 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후 과반수를 훌쩍 넘을 집권 여당이 모든 일을 국민들과의 민주주의적 절차 없이 강행하려고 할 때, 약한 여당들이 촛불의 수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펴서 견제 장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이 지랄같은 시간이 제발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기본은 하는 나라' 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노력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철지난 비디오 돌려 보기를 하는 세상인 것이 속에 불을 키운다.

새벽에 홀로 나간 시장의 주점에서, 목구멍으로 소주를 집어넣어 가슴속의 불을 끄려고 했다. 아는 분들을 두 분 만났다. 그 분들과 소주 병을 깠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